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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에 드디어 박완규가 나왔다.

반응이 어떤가 해서 커뮤니티를 둘러봤더니, 나쁘지 않다.
싸가지 없어서 얼마나 잘하나 봤더니, 노래는 잘하더라 뭐 이런 식이다.



박완규가 좋은 이유는 솔직해서다. 이승철도 솔직해서 좋다.
대중 앞에서 스스럼 없이 '이건 이렇다' 라고 칼같이 자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연예인은 몹시 드물다.
모든걸 버렸더라도 되려 매달리게 되는게 연예계일진데, 이 두 사람은 참 유별나다. 네티즌들은 "멘탈 갑" 이란 칭호를 친히 하사 하시었다.


중저음이 매력적인 보컬이라... 익룡이 어느새 중저음이 매력적인 보컬이 되다니...
가끔 보면 나는 가수다에서 자문위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평을 하는 때가 있다.

가깝게는 '이영현'이 그랬다.
네티즌의 다수는 이영현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말이 많았지만, 따지고 보면 답은 나와있는 문제였다.

이영현은 "자존심" 이라는 말을 했다.
세상에는 작품을 놓고 손과 혀로 밥벌어먹고 사는 놈들이 즐비하지만,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사실 작품을 만든 사람이다.











이영현이 만들고 이영현이 부른 "체념" 이라는 곡의 표현은, 이영현 자신이 글자 그대로 "갑" 이다.
중요한건 부부싸움이 아니라 내 노래 내가 표현하고 있는데 까였다는 사실 자체다.

예전에 임창정이 어디 나와서 "결혼해줘" 였었나, 뭘 불렀는데 랩퍼가 소절마다 영어랩을 끼워넣은 적이 있었다.
내 눈에 윤민수와 이영현의 무대는 마치 이와 같은 조합이었지만, 아무튼 문제는 까였다는 데에 있다.



문득 생각났는데,
무대위의 윤민수는 존나 외롭게 홀로 타고 있다. '어떤' 관객들은 '우연히' 꺼질 듯 타고있는 불을 발견하고는 측은해한다.
무대위의 BMK는 무대를 부수고 있다. 무대 위에는 버섯 구름이 피어오르고, 미쳐 피하지 못한 관객들은 파편을 맞는다.
무대위의 이영현은 관객들에게 불을 뿜는다. 관객들은 불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애매하지만 이런 식이다. 이영현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가창을 한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은 모른다. 그냥 현상이 그렇다.




적우가 까이는건 전에 옥주현도 까였으니 신기한 일도 아니다.
문제는 사생활이나 루머같은게 아니라, 노래 자체다. 박완규가 아무리 싸가지가 없니 뭐니해도, 결국엔 무대로 평가받는 이 시스템에 훌륭한 가수이듯이.

내가 나가수에 나온 가수들 중 대놓고 깐게 윤민수와 조관우, 김조한 등이 있는데... 김조한은 애드립 좀 하지 말라고 깠고 윤민수와 조관우는 음정이 나갔다고 깠다.
그런데 윤민수의 음정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는데, 음폭이다.










사실 통용되는 음폭의 의미는 내가 말하려는 것과는 다른데, 말하자면 음폭이다.
도와 레 사이는 칼로 무 썰듯 잘라지지 않는다. 둘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도 샵이나 레 플렛이 존재한다.
윤민수의 괴성은 그 중심이 비교적 정확한 주파수에 위치해 있지 않다는 거다.











윤민수의 목소리는 뭉쳐있지 않고 갈라져서 나온다. 그 중심음이 정확한 음정에서 빗겨있기 때문에, 음향의 특성을 많이 탄다.
이를테면 소리가 퍼지지 않는 이어폰이나 헤드폰 등에서, 윤민수의 음정은 비교적 정확하다. 하지만 위아래가 컷 된 '아날로그 TV 수신' 환경에서 윤민수의 노래는 들어주기 힘들다. 결국, 윤민수의 보컬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직접' 들어보는 수 밖에 없다.

가끔 커뮤니티를 돌아다녀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음악 프로그램의 음향시설을 탓하는 놈들이 있다.
잊지마라 나가수 녹화하는 곳과 음악중심 녹화하는 곳은 대동소이하다. 아니, 같던가? 문제는 니가 그걸 시청하는 환경에 있지 방송국에 있는게 아니다.
그들은 취미로 황금귀인 니들보다 몇 배나 대단하신 놈들이다. 조기축구를 아무리 잘해도 고등학교 축구부한테 발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뭐 둘러오긴 했는데 요약하면 적우는 노래로 존나게 까이는 중이란 거다.
어차피 노래 말고 뭘 하든 상관 없다. 나가수 자체가 인간극장이라도 상관 없다.
처음부터 무대 말고는 별 관심 없는 사람이 많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무대' 이고, 대부분은 무대만 휙휙 돌려 볼거다.








위에 적은 내용이, 2011년 12월 20일에 작성한 것들이다.
아래에 작성될 일련의 문장들은, 결국 이 내용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같이 가는걸로 한다. 거기에 요즘은 글이 잘 안 써지기 때문에 기워서라도 쓰긴 써야 겠다.


그래서 30일이 지난 이 시점에 평가는 바뀌었는가?
바뀐건 없다. 나는 적우의 창법이 신기한 그 어떤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긴 한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슈퍼스타 K 몇 번째 시즌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승철이 참가자들에게 PA 시스템에 대한 언급을 하는 장면이 있다.
PA 시스템이란... 내가 1999년인가 1998년도에 미디 음악을 시작하려고 구입한 첫번째 관련잡지의 이름이기도 한데, 프로페셔널 오디오 시스템의 약자다. 스펠링은 어렵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는 흔히 마이크 잡는 자세를 보고 "야 너 노래방 자주 가는 구나" 같은 멘트를 날리곤 한다.
이상하게 같은 노래방 기계를 가져다 놔도, 집에서 나오는 반주와 노래방에서 나오는 반주는 뭔가 다른 것 같다. 이유가 뭘까?

내가 한창 카네기홀에서 아줌마들을 후리고 있을 무렵 (사실 연줄로 들어간 나부랭이었지만) 나이트가 터져라 뿜어져나오던 MR을 재생하는 컴퓨터는 80486 이었다.
그 무렵에도 나는 컴퓨터에 대해 미묘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어떻게 3.5 인치 디스크 드라이브도 안쳐박힌 이딴 컴퓨터로 이런 빵빵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지 기절 초풍할 노릇이었다. 심지어, 내가 인터넷에서 다운받아간 40KB 짜리 Livin' la vida loca mid 파일을 스피커가 터져라 재생하는 이 컴퓨터가 그렇게 신기했던 거다.

지금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런 충격들이 노래방에서 마이크 좀 돌리다가 PA 시스템을 접하게 되면 전신을 강타한다는 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집과 노래방은 출력기기의 차이가 존재한다. 거기에서 콘솔이 갖추어진 무대로 올라가면 출력기기는 물론이거니와 기본 장비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콘솔이나 믹서가 존재하게 되면, 단지 손가락 몇개로 마이킹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이것이 흔해빠진 동네 환갑잔치에도 있는 수준이고, 실제 방송가능한 PA 시스템으로 가게되면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현재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들 중 적우와 테이는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
이승철의 ㅍ 발음이나 이은미의 sh 발음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만큼 섬세하게 PA 시스템을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효범이 극단적으로 보여주듯, 마이크액션은 팝핑이나 치찰음 같은 감상에 방해되는 요인들을 없앤다. 고음부로 갈수록 한큐에 찝어내는 하이노트는 높은 압력을 요구하고, 때문에 기존의 마이크 거리를 유지한다면 레벨은 리미터에 걸리게 된다.
사실 신효범과 같은 형태로 마이킹을 하는건, 현대 레벨의 시스템에선 별로 의미가 없다.. 단지 이건 습관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해내지 못하고 있는 쪽이 위에 언급한 두사람이다. 음정이나 박자 같은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설프잖아. 운전을 하는데 사고는 안나, 그런데 뭔가 어설퍼, 왠지 조수석에 타기가 싫어. 사실 둘 다 음정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은미의 라이브를 보고 있노라면, 본인은 엄청나게 쥐어짜내서 고음을 내고 있는데 실제 들리는 소리는 마치 배경음악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수준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도입부를 부를 때 뭔가 가수처럼만 불러줬으면 좋겠다.

테이의 경우는 고작 한 번의 무대를 보여줬을 뿐이다. 아직 조금 더 있다가 까도 괜찮다.
적우는 본인 노래의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지, 한다면 어떤 형태로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과연 그가 알고 지내는 작곡가들이나 프로듀서, 동료들이 그에게 어떠한 조언도 하지 않는지, 그 자신은 자신의 노래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예술이란게 짜여진 폼이 있다는건 웃기지만, 사실 노래란건 그렇다. 발음 하나로도 촌스럽고 세련됨을 표현할 수 있다. 들숨만으로 슬픔을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스테레오 타입'의 일부이다. 소몰이로 댄스곡을 부르면 신이 안난다. 가성으로 록을 부르면 평생 오이만 먹고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
약속된 것은 없지만, 받아들여지는 '보편적인 공식' 이나 '수법'등은 분명 존재한다. 적우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이다.

새로운 것은 새롭다는 가치를 갖는다. 문제는 이것을 나눠야 한다는 거다.
새로움과 익숙함이 공존하면, 익숙함의 아량으로 새로움을 받아들일 여유를 갖게 된다.
문제는 새롭고 익숙하고를 떠나서 익숙한 걸 할 수 없다는 점, 자신의 것이 어떤 형상인지도 모를 것 같다는 점이다.

윤민수는 1라운드와 비교해 하나도 달라지질 않았다.
박완규에게 물어보면 박완규는 노래에 대한 평가 자체를 안한다. 처음에는 못 들은척 하더니, 이젠 목이 갔으니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윤민수가 이제 점점 그럴싸하게 들리는건, 감정을 줄여서 그런게 아니라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소리로 감정을 덮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우 또한 마찬가지다. 자문위원단이라고 있는 사람들은 적우의 가창력에 대해 단 한번도 평가를 하지 않았다.
장점을 살리네 마네, 혼이 살아나네, 편곡이 어떻네... 노래 그 자체, 가창력 그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없다.
적우가 점점 괜찮아지는 것은 긴장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소리로 보컬을 덮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저히 일렉트로닉 기타를 뚫고 나오는 보컬을 낼 수 없었던 서태지가, 무대에서 라이브를 하기 위해 했던 선택은 더블링이다.
리벌브를 살린 완벽한 더블링을 위해 본인이 무대를 모두 셋팅하고 사전에 보컬을 녹음해둔다. 뭐가 라이브고 뭐가 녹음인지 구분이 안된다.
이것과 똑같은거다. 보컬이 불안하면 더블링을 하든지, 악기로 보컬을 덮어버리면 된다.



까는건 이정도로 하고...

이젠 박완규가 걱정이다. 전엔 슬로우가 안된다고 까이더니, 이젠 빠른곡이 안된다.
보여줄 건 이미 다 보여줬다. 더 이상 뭘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춤이라도 추려나?
고음부로 가는 찰나에, 익룡이 가끔씩 들려서 기대를 했지만, 힘으로 막는걸 보고 기대를 접었다.
익룡때엔 어딘지 맥아리가 없었다. 소리가 너무 매끄러웠잖아. 지금은 맥아리는 있는데 신이 안나... 억지로 만들어 넣어서 그래...
거기에 고해를 부를 때 이미 목이 갔다. 본인 스스로도 힘으로 쥐어 짰다고 말했다. 결국 괜찮아진 목으로 나와서, 목 다쳐서 돌아가는 거다.




에라 모르겠다. 박완규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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